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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은 안양만안문화제의 백미라 할 정조대왕 화산능행차가 원형에 가깝게 재현돼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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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2대 정조대왕(재위 1776~1800년 24년간)은 업적만큼이나 효심이 깊었다. 조선 왕조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삶을 살았던 정조의 일생을 놓고 보자면,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은 단지 서막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 사도세자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 영조로부터 끊임없이 성군의 자질을 시험받는가 하면, 외척의 모략과 암살 위협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가 겪어야 할 고통은 끝이 없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왕조를 파국으로 몰아 간 파당정치를 해소하고, 경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루어 냈는가 하면, 부국강병으로 앞날을 도모한 성군 중의 성군. 바로 정조대왕이다.
이러한 정조의 효심과 애민정신(愛民精神)을 기리기 위한 행사가 매년 안양문화원(문화원장 직무대행 김수섭) 주최로 열리는 ‘안양만안문화제’다. 혹자는 ‘정조의 도시는 수원 아닌가’ 하고 반문하기도 한다. 모르는 말씀. 안양도 정조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고장이다. 뜨거웠던 2012 제27회 안양만안문화제 현장에서 그 인연의 끈을 찾아봤다.
# 정조의 만안교(萬安橋)…“만년동안 편안하게 건너라”
안양만안문화제의 시작은 안양시 석수동에 위치한 만안교(萬安橋·경기유형문화재 제38호)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만안교는 정조대왕이 생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 화산에 옮기고 거의 해마다 능을 참배하러 갈 때 행렬의 편의를 위해 만들었다. 당초 능참로는 동작동에서 남태령을 넘어 과천, 고천, 수원, 화성으로 이어졌다.
당시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용산, 노량진, 동작, 과천을 통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으나 중간에 교량이 많고 남태령 고개 때문에 행차로를 닦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까지 왕이 행차하는 길에는 임시로 나무다리를 가설했다가 끝난 뒤 바로 철거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행차 때마다 놓았다 헐었다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고 평상시에도 백성들이 편히 다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정조의 명으로 영구적인 돌다리를 놓게 되었다.
무엇보다 과천에서 인덕원으로 나오는 길 오른쪽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영조에게 모함해 죽게 만든 정승 김상노의 친형 김약노의 묘가 있어 이를 불길하다 해 능참로를 변경했던 것.
만안교는 ‘만년동안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조가 직접 지었다. 전체적으로 축조 양식이 매우 정교해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된다. 원래는 남쪽으로 약 460m 떨어진 석수로의 교차지점에 있었는데 1980년 국도 확장 때 이곳으로 옮겨 복원했다.
이에 안양문화원에서는 정조의 애민정신과 효심이 녹아 있는 안양의 대표 문화유적 ‘만안교’의 뜻을 기리고자 안양만안문화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올해로 27회째를 맞은 안양만안문화제는 안양의 대표적 전통문화축제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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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안양 삼덕공원에서 신랑 김병진씨와 신부 황명자씨의 전통 혼례식이 거행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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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채로운 문화행사로 채워진 ‘종합선물세트’
10월10일부터 31일까지 안양문화원, 안양아트센터, 안양삼덕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안양만안문화제는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먼저 지난 10일 안양시민속경연대회로 그 화려한 서막을 연 문화제는 전통혼례, 정조대왕 화산능행차 시연, 전통문화체험, 문화가족발표회 및 문화가족 작품전시회, 안양향토문화연구소 세미나, 안양서도회전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축제의 달, 10월 안양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특히 지난 13일 안양삼덕공원에선 신랑 김병진씨와 신부 황명자씨의 전통 혼례식이 거행됐다.
웨딩드레스 대신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신랑·신부들은 안승용 선생의 집례(주례)에 따라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맺었다.
전통혼례는 조선후기 사대부가의 전통혼례를 재현해 혼례의 서막을 알리는 길놀이를 시작으로 신랑이 기러기를 신부댁에 드리는 절차(전안례), 경건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신랑·신부가 손을 씻는 의식(관세례), 신랑·신부가 맞절을 교환하는 절차(교배례), 술잔을 서로 나누는 근배례에 이어 인사를 마치는 예필까지 주례 선생의 자세한 안내에 따라 총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전통혼례식에는 가족, 친지 외에도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해 행복을 기원했다.
전통 혼례식이 워낙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해 신랑·신부와 관계자들은 잦은 실수를 연발해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됐다. 보는 이들도 절도있고, 복잡합 혼례절차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6살 손주녀석과 함께 전통혼례식 지켜본 유병만(68)씨는 “요즘은 30분만에 초스피드하게 끝나는 결혼식이 대부분인데 오랜만에 전통 혼례복과 초례상, 꽃가마, 조랑말 등 우리의 전통 결혼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복잡한 절차로 서로에게 예를 정성껏 다하는 전통 결혼식은 부부에게 경건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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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체험 코너에서 어린이들이 다식만들기를 체험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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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치기 체험중인 어린이들. | |
# 만안문화제의 백미…정조대왕 화산능행차
지난 14일 진행된 정조대왕 화산능행차 시연은 안양만안문화제의 백미다.
오후 2시 안양여고 앞을 출발한 행차는 300여 명이 참여해, 중앙로와 우체국사거리를 거쳐 명학공원에 도착하기까지 조선시대 당시 화려하면서도 위엄있던 어가행렬을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며 일대 장관을 연출했다.
조선 정조대왕이 능행차시 억울한 백성들이 임금님께 직접 호소하기 위해 징을 치게 하고 억울함을 직접 해결해 주었던 ‘격쟁(擊錚)제도’를 시행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안양만안문화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전통문화 체험의 장으로써 역할을 톡톡히 했다.
탈춤추기부터 딱지치기, 전통매듭짓기, 다식만들기, 전통떡 맛보기, 윷놀이, 투호, 조랑말 타보기 등 평소 학교와 학원에선 경험할 수 없는 각종 전통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상덕 안양문화원 사무국장은 “안양만안문화제는 지역의 향토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안양시민이 참여해 시민과 함께 안양의 전통문화브랜드를 창출해 안양의 문화가치를 높여 안양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시민에 의해, 시민을 위한 축제로 거듭날 때 안양의 전통문화예술은 지역의 폭넓은 문화벨트로 자리매김해 안양문화의 정서적 근간이 된다”고 말했다.